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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이야기

벤츠 SL 시리즈 평가

by 알엔피싱 2004. 2. 1.

벤츠 SL시리즈 – 모든 이들의 드림 카

멋진 ‘오픈카’에서 뭇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드라이브를 즐기는 일은 아마도

누구나 한 번쯤 꿈꾸어 보았을 일일 것이다. 자동차는 장소의 이동을 위해

만들어진 ‘기계’가 틀림없지만, 이상하게도 그것을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기계보다는 좀 더 ‘멋있는’ 자동차가 더 좋은 차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게 사실이다.

이를테면 경승용차 같은 ‘효율적인’ 차보다는, 그보다 기름이 많이 들어도,

즉 ‘비효율적’ 이어도 사람들은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차를 타고 싶어하고, 또 개발되기 마련이다.

 

1세대 1954년형 300SL(W198)


그런데 사람들이 타고 싶어하는 차, 소위 「드림 카」는 단지 비싼 고급 차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시대를 앞서 간 첨단기술이나 성능을 가진 차가 있다면,

당연히 그 시대 사람들이 바라는「드림 카」일 것이다.

최초의 자동차를 만든 ‘벤츠’는 오늘날에 와서는 고급승용차의 대명사지만,

벤츠에는 고급 ‘세단’만 있지는 않다.

속도 무제한의 고속도로 아우토반의 나라 독일의 메이커답게 벤츠도 고성능 스포츠카가 있다.

독일의 스포츠카라고 하면 포르쉐 같은 ‘고성능 기계’의 기능적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지만,

벤츠의 스포츠카는 그런 독일의 기능주의를 역시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와는 조금 다른 그 무엇, 그러나 딱히 표현하기 어려운 어떤 것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1세대의 1957년형 SL로드스터(W121)


벤츠의 스포츠카는 300SL모델이 1954년부터 나오기 시작해서 지붕을 없앤

로드스터(Roadster)가 1957년에 나온다. 그리고 1963년형 230SL 파고다(Pagoda),

뒤 이어1971년의 SL, 1989년의 500SL, 그리고 2003년형 SL500과

2012년형 SL클래스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왔지만, 계속해서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것 같다.

그것은 바로 그 시대를 뛰어 넘는 어떤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후드 위의 블리스터


갈매기가 날개를 펼치듯 열리는 걸 윙 도어(gull wing door)가 인상적인

1세대 300SL은 구조적 제약조건을 특이한 도어 디자인으로 승화시킨 가장 대표적인 예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견 300SL의 걸 윙 도어는 단지 멋을 부린 것으로 보인다.

물론 멋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단지 멋만이 아니라 새로운 구조의 적용에 따른

구조의 제약을 스타일적인 방법으로 승화시킨 것이었다.

300SL에는 그 이전의 사다리 형태와 같은 차체 프레임 대신에

스페이스 프레임(space frame)이라고 불리는, 마치 철교나 체육관

지붕구조물에서의 트러스(truss) 구조와 같은 프레임이 쓰였다.

스페이스 프레임구조의 채택으로 차체의 강성을 확보하면서도 훨씬 가벼워져서 주행성능이 높아졌다고 한다.

그러나 가느다란 부재들 간의 결합으로써 전체적인 강성을 얻는

스페이스 프레임의 특성 때문에 문턱을 운전자 팔꿈치 높이까지 올라가게 만들 수밖에 없게 된다.

이것을 문이 지붕의 일부분까지도 함께 열리게 함으로써 타고 내리는 데 필요한

크기를 얻게 된 것이 바로 300SL의 걸 윙 도어이다. 이것은 당대에 보기 어려운 새로운 스포츠카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300SL은 스포츠카로써는 생명과도 같은 날렵하고 낮은 후드를 위해 엔진을 비스듬하게 눕혀서 탑재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진의 헤드커버 모서리와 흡기포트가 후드와의 간섭되자

그것을 피하면서도 낮은 후드의 디자인을 유지하기 위해 두 개의 블리스터(blister)를

후드 위에 만들게 된다. 이것은 벤츠 디자인의 아이콘이 된다.

 

1954년형 SL의 엔진


1963년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2세대 모델(W113) 230SL은 일명 ‘파고다(PAGODA)’라고 불리기도 했다.

파고다라는 이름은 230SL의 하드탑(hard top) 형태에서 나온 것으로,

다른 차들과 구분되는 구조의 지붕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것으로 인해 전체 차체의 높이가 낮은 SL에서 넓은 측면유리로 시야가 넓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운전자와 탑승자의 머리공간을 넓힐 수 있었다.

독특하게 아래쪽으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C 필러와 경쾌한 차체 형태가 이전의 300SL과는 달리

근대적인 SL 시리즈의 스타일개념을 정착시켰다.

 

2세대 SL파고다(W113), 1963년


1971년에 발매된 3세대 모델 350SL(R107)은 벤츠의 근대적 스포츠카 디자인의 전형을 보여주기

시작한 모델로 평가된다. 특히 3대의 SL 시리즈 하드탑 모델은 성공의

상징이었던 것은 물론이고, ‘플레이보이들의 드림카’,

그리고 인기 연예인들의 ‘자가용’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모델이다.

우리나라에 「원더우먼」이라는 영화 시리즈로 알려졌던 여배우 「린다 카터」 역시 3세대 SL을 탔었다고 한다.

 

3세대 SL(R107), 1971년


3세대 SL의 테일 램프(tail lamp)는 벤츠 특유의 줄무늬(groove)가 파여 있는 디자인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홈의 깊이가 얕아지거나 매끈해지는 등으로 더 간결하게 정리되었지만,

이 시기에는 벤츠 고유의 테일 램프 디자인의 특징이 되었었다.

테일 램프 렌즈 표면의 홈을 파 놓은 것은 가령 흙탕물이 튀었다든지 폭설이 내려 쌓여도

렌즈가 가려지지 않도록 해서 후방의 차량들에게 신호를 정확히 전달하기 위한 기능적 디자인이다.

이러한 테일 램프 디자인은 4세대 모델에도 사용된 것은 물론이고,

1970년대와 80년대에는 다른 메이커의 차량에서도 유행처럼 나타나기도 했다.

3세대 SL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았는데, 4세대 모델이 나오기 직전인 1989년까지 무려 18년

동안이나 생산 판매되었다.

 

줄무늬가 들어간 테일 램프 디자인


1989년에 등장한 4세대 SL(R129)은 12 기통 5000cc 306마력의 고출력 엔진을 장착하여,

고성능 럭셔리 쿠페로써 완전히 자리잡았다. 물론 3000cc 엔진도 있었고,

컨버터블 루프는 전동 모터와 유압을 이용해서, 이전의 모델들이 지붕을 손으로 열고 닫았던 데에 비하여,

이때부터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여닫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하드 탑 지붕만은 여전히 따로 떼어서 보관해 두었다가 손으로 조립해야 했다.

 

4세대 SL(R129), 1989년


사실 ‘오픈카’는 타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 모두가 폼 나고 부러운 자동차이지만,

차체가 뒤집히는 전복(顚覆) 사고 시에는 사실 아무리 벤츠라 하더라도 속수무책으로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그에 대한 대책으로 일부의 컨버터블 차량들은 좌석 뒤쪽에 롤 바(roll bar)를 설치하기도 하지만,

그럴 경우에 오픈카로써의 ‘폼’이나 ‘낭만’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플레이보이들의 드림 카로 ‘폼에 살고 폼에 죽는’ 폼생폼사 SL에게 롤 바의 설치는

어쩌면 타협할 수 없는 문제였는지 모른다.

4세대 SL은 차체가 어느 각도 이상으로 기울면 자동으로 솟아오르는 롤 바를 달게 되었다.

정말로 이 장치는 ‘폼을 내기 위한’ 첨단장비이다.

 

4세대 SL의 전동식 롤 바


그런데 4세대 SL 앞모습의 인상을 보면 벤츠의 SL 시리즈의 스타일 전통을 따르고 있기는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약간의 ‘오만함’ 같은 성격이 느껴지기도 한다.

매너 있고 점잖지만, 어딘가 모르게 놀기 좋아하는 사람같은 인상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필자는 4세대 SL이 가진 그런 이미지가 참 마음에 들게 느껴졌었다.

결핍된 것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래서 필자는 역대 SL 모델 중

4세대가 가장 마음에 든다.

자동차가 단지 기계가 아닌, 마치 품성을 가진 생명체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 오만(?)한 이미지의 4세대 SL의 앞 얼굴


그에 비하면 2003년에 나온 5세대 SL R230은 조금은 순진한 인상이다.

5세대 모델에서 돋보이는 장비는 바리오 루프라고 불렸던 전동식 하드탑 지붕이었다.

사실 전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오픈카들의 화려한 모습 이면에 존재하는,

남들에게는 차마 이야기할 수 없는 속사정은 누수(漏水)와 풍절음(風切音)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화창하게 맑은 날에는 만인의 부러움을 받으며 ‘폼 나게’ 달릴 수 있지만,

비 오는 날에는 마치 초가지붕에서 비가 새듯이 천으로 된 지붕과 차체 이음새에서

떨어질지도 모르는 물방울을 걱정해야 한다. 아무리 정교한 설계로 지붕을 만든다 하더라도 물이

새는 것을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는 것 같다.

 

5세대 SL(R230), 2003년


게다가 지붕을 닫은 채로 차를 빠르게 몰면, 천으로 된 지붕을 타고 들려오는 바람 소리는

마치 태풍이 몰아치듯 울려대기 때문에 사실상 차 안에서 무드 있게 음악을 감상하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지붕을 열었을 때의 ‘멋’에 대한 대가라고 인정하고 감수하는 오픈카의 운명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픈카로써의 멋과 하드 탑으로써의 안락함을 양립시키기 위해 나온 모델이 바로 5세대 SL의

컨버터블 하드 탑이었던 것이다.

 

5세대 SL의 컨버터블 하드탑


현재의 6세대 SL 모델(R231)은 실제로는 5세대 모델(R230)의 페이스 리프트(face lift) 차량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이미 2013년에 앞모습을 한 번 고친 것에서 다시 손을 본 것이다.

그래서 2015년형으로 조금 더 다듬은 SL은 벤츠가 생각하는 스포츠카(슈퍼카 혹은 레이싱 카 이기 보다는

멋진 스포츠카가 어떤 느낌을 가져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어찌 보면 6세대 SL모델은 그 동안 벤츠 브랜드의 특징인 안락성을 높이기 위한 발전의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6세대 SL(R231)


그런데 만약, 스포츠카가 잘 달리기는 하는데 차체 디자인에서 ‘노는 분위기’가 없다면,

그건 스포츠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런 차, 잘 달리기만 하는 차는 레이싱 머신(racing machine), 즉 경주하는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

타고 싶은 멋진 스포츠카는 성능으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성격을 가진 디자인, 그래서 그 특징이 플레이보이가 됐든 아니면 단정한 신사가 됐든지 간에,

그런 개성을 가지고 정말로 멋있게 달릴 수 있다면, 그게 바로 누구나 타고 싶어하는 스포츠카이며,

드림 카 가 될지도 모른다.


3초대 차들 모여!

모터 트렌드 입력 2017.05.12 11:19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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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백' 3초대 차들을 모았다. 이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3초를 보냈다. 모두 시속 100킬로미터의 벽을 넘었지만 그 과정과 결은 확연하게 달랐다. 3초 남짓한 순간에 펼쳐진 드라마에서 우리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
(왼쪽부터)CADILLAC ATS-V, BMW M760Li XDRIVE, FERRARI 488 GTB, MERCEDES-AMG GT S, LOTUS EXIGE S CR


2년 만이다. <모터 트렌드>가 0→시속 100킬로미터 가속에 대한 기획을 꺼내든 건. 우린 이미 ‘제로백’ 4초에 대해 장황하게 풀어놓은 적이 있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4초대는 여전히 들어서기 어려운 세계다. 아직 이 벽을 넘은 국산차는 없다. 곧 데뷔할 기아 스팅어가 최초로 4초대(4.9초)를 기록할 전망이다. 하지만 프리미엄 브랜드나 스포츠카 브랜드의 사정은 다르다. 지난 2년간 터보 엔진과 사륜구동 시스템이 급속도로 확산되며 판도가 달라졌다. ‘제로백’ 5초대의 ‘승용차’들이 4초대로, 4초대의 고성능차와 스포츠카들이 3초대로 대거 이동했다. 슈퍼카나 하이퍼카가 전기모터까지 동원해 2초대로 달아나는 이유가 바로 이런 변화 때문이다.우린 이번에 ‘제로백’ 3초대 차들을 모았다. 이제 동경의 대상이 아닌 현실이니 그럴 의미는 충분했다. 10년 전만 해도 3초대는 슈퍼스포츠카의 영역이었다. 엔초 페라리(3.2초), 쾨닉세그 CC8S(3.5초), 벤츠 SLR 맥라렌(3.5초), 파가니 존다 S(3.7초),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3.8초), 포르쉐 카레라 GT(3.9초)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젠 세단도 수두룩하다. 심지어 메르세데스 AMG GLC 63 S 같은 SUV도 0→시속 100킬로미터 가속을 3.8초 만에 마친다.  

우린 3초 남짓한 순간에서 우리가 무엇을 느낄 수 있을지 궁금했다. 단, ‘느낌’이라는 건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니 계측기를 이용해 그 과정을 데이터로 담고 이를 분석한 내용을 함께 풀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가급적 색깔이 다른 차들을 불러내기로 했다. 그렇게 모은 차가 바로 이 세 대의 스포츠카와 두 대의 세단이다. 엔진은 V6, V8, V12였으며 출신 국가는 미국, 영국, 이탈리아, 독일이었다.시승차 섭외가 끝난 후 우린 계측 장소를 찾았다. 그간의 경험에 따르면 3초대 성능이면 가속에 60미터, 제동에 40미터 정도가 필요했다. 그래서 약 200미터의 직선로를 가진 아주자동차대학교의 주행실습장을 사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이곳엔 잦은 드리프트 주행 때문에 타이어 잔해가 꽤 많았다. 평범한 차에겐 별문제가 없는 환경이지만 우리가 불러낸 3초대 차들에겐 적합하지 않은 조건이었다. 하지만 이건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레이스카가 아니니 꼭 서킷과 같은 환경을 갖춰야 할 필요는 없다. 또한 같은 조건에서 얻은 데이터라 비교 분석에 활용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각 브랜드에 미리 협조를 구해둔 터라 시승차들의 타이어 상태는 최상이었고 모두 고급 휘발유를 주유한 상태였다. 계측은 지극히 평범한 모드로 진행했다. 론치컨트롤의 사용 자제를 요청한 브랜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변속기를 자동(D)에 두고 드라이브 모드를 주행안정장치가 꺼지지 않는 선으로 설정해 비교적 일반적인 상황에서의 가속 성능을 알아보기로 했다. 

 

테스트 조건 계측장비 레이스로직 V박스 스포츠 / 장소 아주자동차대학 주행실습장 / 노면 아스팔트 노면 상태 불량 / 코스 고저차 1.1m / 날씨 맑음 / 기온 섭씨 5.3~18.9도 (평균 12.1도) 설정 변속기 D, ESP on, 에어컨 OFF / 연료 고급 휘발유 / 운전자 몸무게 78kg ※테스트 결과는 드라이버의 운전습관과 노면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다음엔 함께해 LAMBORGHINI HURACAN RWD, AUDI R8, PORSCHE 911 GTS, ASTON MARTIN DB11, MCLAREN 570S 이런저런 이유로 함께하지 못한 3초대 차들이다. 다음에는 꼭 우리와 같이 하루를 보낼 수 있길 소망한다.

 

3초 동안 일어나는 일들

심리학에는 ‘3초 법칙’이란 말이 있다. 첫인상을 결정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3초라는 거다. 이렇게 결정된 첫인상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콘크리트 법칙’이라고도 한다. 눈을 세 번 깜빡이는 데 걸리는 시간,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쉬는 데 걸리는 시간, 벚꽃이 30센티미터 떨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 3초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처음 본 사람을 평가하고 그 평가대로 행동한다.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난 사진을 찍을 때 꼭 셋을 센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셋을 셀 거다. 하나, 둘, 셋, 찰칵! 외국인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면 굳이 영어로 셋을 센다. 원, 투, 스리, 찰칵! 그러니까 나에게 3초는 누군가의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 셔터를 누를 때까지 걸리는 즐거운 시간이다. 생각해보니 우리 집 고양이가 바닥에서 ‘폴짝’ 뛰어서 침대 위로 올라오는 데도 3초 남짓 걸리는 것 같다. 이건 행복한 시간이다. 초등학생 시절 운동회 날이면 달리기를 하는 게 가장 두려웠다. 출발선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으면 가슴이 쿵쾅거렸다. 3초가 그렇게 길 수가 없었다. 이건 두려운 시간이다. 
상황에 따라 3초는 정말 길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3초는 정말 짧은 순간이다. 3초 안에 인간은 10미터를 걸을 수 없고, 트렁크에 실은 물건을 제대로 꺼낼 수도 없다. 바닥에 떨어진 돈을 줍는 것도 3초로는 모자라다. 그런데 이 짧은 3초 만에 어떤 차는 시속 100킬로미터를 아무렇지 않게 주파한다. 우리가 데려온 다섯 대의 시승차 역시 ‘제로백’ 3초대를 당당히 외치고 있다. 이들에게 3초는 가장 짜릿한 시간이다. 그리고 우린 그 짜릿한 순간을 온몸으로 경험했다. 물론 3초가 넘는 경우가 허다했지만. 
글_서인수

 

 

3.8 sec, V8 Twin Turbo, 7 DCT, FMR

MERCEDES-AMG GT S

이런 일도 있구나 싶었다. ‘제로백’ 3초대 차들을 모아놓고 보니 메르세데스 AMG GT S는 딱 중간 성격을 가진 모델이었다. 성능으로는 슈퍼스포츠카에 근접하는 페라리 488 GTB가 이날의 대표 주자였다면 원자력 항공모함 같은 BMW M760Li x드라이브와 같은 슈퍼 크루즈는 이전에는 보도 듣도 못한 괴물이었으며, 코너링에 특화된 경량 스포츠 머신이라고 생각했던 로터스 엑시지 S CR이 3초대를 위협하는 걸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이날 모인 차들 중 유일하게 뒤 타이어를 활활 태울 수 있는 캐딜락 ATS-V가 ‘순둥이’처럼 보일 정도의 조합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만 말이다. 

GT S는 고성능 GT의 성격이 강하다. 차체 크기나 휠베이스는 488 GTB와 비슷하지만 100킬로그램가량 무거운 차체와 FR 레이아웃 등에서 주행안정성을 강조한 차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고성능 GT의 색깔이 부쩍 강해진 포르쉐 911 터보와 비교해봐도 이런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성격은 저회전부터 최대토크를 발휘하는 엔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마치 고성능 세단처럼 66.3kg·m의 최대토크를 1750rpm부터 4750rpm까지 매우 폭넓은 영역에서 평탄하게 발휘한다. 실린더 직경보다 스트로크가 조금 더 긴 롱 스트로크 설계를 택한 것도 바로 토크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반면 정교한 파워 컨트롤이 중요한 488 GTB는 스퀘어에 가까운 쇼트 스트로크 설계로 최대토크를 3000rpm에서 발휘하며, 이마저도 저단 기어에서는 제한해 과도한 토크가 접지력을 흐트러뜨리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GT S의 가속 감각은 호쾌하다. 가속페달을 밟는 순간 차체 뒤쪽이 살짝 가라앉으며 땅을 파고들 준비를 한다. AMG 엔진들은 배기량이 크든 스트로크가 길든 상관없이 회전 상승이 대단히 매끄럽다. 묵직한 쇳덩어리가 기름통 안에서 회전하는 듯한 감성은 AMG만의 전매특허. 이런 감각과 함께 쏟아져 나오는 거대한 토크가 차체를 사정없이 떠민다. 즉 GT S의 가속 감각을 결정짓는 것은 파워라는 느낌이 강하고, 이런 느낌이 호쾌함으로 표현된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GT S는 2단으로 시속 100킬로미터를 시원하게 넘긴다.하지만 넘치는 파워로 모든 것을 제압하는 GT S의 가속에는 허점이 있다. 바로 ‘넘치는’ 파워다. 풀스로틀 상태에서 계기반을 보면 ESP가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ESP 버튼을 눌러 스포츠 핸들링 모드를 켜도 트랙션 컨트롤은 여전히 작동한다. 그리고 변속이 이루어지는 6600rpm은 사실 레드존이 아니다. 가속페달을 점진적으로 밟으면 엔진이 7000rpm까지도 회전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요컨대 출력이 접지력을 이기고 있다는 뜻이다.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2500rpm 부근에서 회전 상승이 멈칫하는 현상이 있다. 듀얼클러치 변속기가 클러치를 붙이는 과정으로 보인다. GLA 45 AMG가 클러치를 보호하려고 클러치 미팅을 주저하는 바람에 부드러운 출발이 더 빨랐던 것이 떠오른다. GT S에서 ‘제로백’을 단축하려면 동력 전달 부위에 과도한 힘이 가해지지 않을 정도의 가속페달 조작량과 변속 시점을 파악하는 것이 필수다. 바로 여기에 잃어버린 0.32초가 있다(제원 3.8초, 실측치 4.12초).3초의 세계는 이전에 경험했던 4초의 세계와는 완전히 달랐다. (엔진이) 조금 더 강하고, (내 간이) 조금 더 크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여기서부터는 인간의 섬세한 개입이 필요했다. 물론 박력 넘치는 배기 사운드와 2단에서 시속 100킬로미터를 넘기는 호쾌함 등 GT S가 주는 쾌감은 비교 대상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컸다. 세상에 이런 GT카가 또 있을까? 글_나윤석(자동차 칼럼니스트)

 

MT RATING
막강한 힘, 우렁찬 배기 사운드, 앞바퀴가 들릴 것 같은 화끈한 몸짓. 서킷에서도 즐거웠던 GT S에게 드래그 레이서의 자질이 있을 줄은 몰랐다. 자극적인 즐거움은 최고다. ★★★★☆ 류청희
메르세데스 AMG의 엄청난 배기 사운드는 운전자와 구경꾼 모두의 심금을 울렸다. ★★★★☆ 강병휘
가속페달을 확 밟으면 저 멀리 있는 노즈의 끝이 들릴 것 같지만 굉장히 차분하고 안정적으로 무게를 뒤로 보낸 후 맹렬하게 가속한다. 실제 가속 성능과 가속 감각이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도 신기하다. ★★★★ 이진우
GT S는 운전자가 즐거움을 느끼는 포인트 모두를 정확하게 짚고 있다. 특히 특유의 터프한 가속 감각과 배기 사운드에 빠지면 헤어나기 힘들다. ★★★★☆ 류민

 

AMG GT는 극단적인 비율을 뽐낸다. 이제껏 이런 차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보닛이 길다. 끝내주는 스타일과 이상적인 앞뒤 무게 배분을 실현해주는 ‘신박한’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AMG GT는 극단적인 비율을 뽐낸다. 이제껏 이런 차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보닛이 길다. 끝내주는 스타일과 이상적인 앞뒤 무게 배분을 실현해주는 ‘신박한’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GT S는 후륜구동 참가차 중 토크가 가장 강했다. 때문에 타이어의 부담도 가장 컸다. 출발이 힘들다는 것이 그래프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시속 20킬로미터 도달 시간이 0.96초로 이날 모인 모델들 가운데 가장 느렸다. 1750rpm부터 쏟아져 나오는 66.3kg·m의 토크에 295mm의 초광폭 타이어도 견디지 못한 것이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3000rpm 이상만 되면 1단에서는 물론 2단에서도 쉬지 않고 트랙션 컨트롤이 개입한다. 오죽하면 2단으로 변속하기 위해 엔진이 토크를 줄이는 순간 오히려 가속력이 증가하는 기이한 현상까지 벌어질까. 실측 결과가 제원상의 ‘제로백’인 3.9초보다 0.39초밖에 늦지 않은 건 2단에서 시속 100킬로미터를 돌파하기 때문이다. GT S는 과다 토크에 의한 휠스핀을 줄인다면 기록도 더 단축될 것이다. 굳이 레드존까지 가속하지 않고 정확한 타이밍을 찾아 미리 변속하는 것이 관건이다.
 글_나윤석

 

 

3.7 SEC, V12 Twin Turbo, AWD, F Segment Sedan

BMW M760Li xDrive

공교롭게도 이달에 극과 극의 체험을 했다. 0→시속 100킬로미터 가속을 3초대에 끝내는 극악무도한 차 다섯 대를 한꺼번에 시승하고, 며칠 뒤 기아 모닝과 쉐보레 스파크에 계측기를 달고 테스트를 했다. 성능은 하늘과 땅 차이지만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킬로미터까지 3초대에 가속하는 건 많은 집중력이 필요하다. 3~4초의 시간 동안 난 이 차들이 어떤 방식으로 노면을 박차고 나가는지 느끼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반면 모닝과 스파크에서는 다른 방식의 집중이 필요하다. 두 차는 가속페달이 부러져라 밟아도 15초 안쪽으로는 절대 들어오지 못했다. 15~17초 동안 있는 힘껏 가속하며 난 어떤 차가 갑자기 뒤에서 나타나 날 추월하는 것은 아닐까 하며 룸미러를 봤고 바닥의 균열과 굴곡에 가냘픈 타이어가 뻥 터져버리거나 그립을 잃어 휙 도는 건 아닐까 하며 노면을 살폈다. 테스트를 위해 모닝과 스파크로 아주 긴 직선도로를 여러 번 달려보니 ‘제로백’ 3초대가 얼마나 빠르고 무서운 성능인지를 더 잘 알 수 있었다.

‘빠름’은 자동차의 원초적인 목적이다. 인간은 더 빠르게 이동하기 위해 자동차를 발명했고 ‘더 빠름’을 갈구하며 차의 속도를 높였다. 그리고 우린 이렇게 0→시속 100킬로미터를 3초대에 달리는 차를 만나게 됐다. 물론 지금도 인간은 속도를 갈구하고 있다. 여기 모인 페라리, 메르세데스 벤츠(AMG), 로터스가 좋은 예다. 그들은 단 0.1초를 줄이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돈과 노력, 그리고 시간을 들이고 있다.  그들의 결과물은 놀랍다. 페라리는 정신을 아연하게 할 정도였다. AMG는 적을 향해 질주하는 성난 헐크의 등에 탄 느낌이다. 로터스는 속도에 대한 무서운 집념으로 똘똘 뭉쳐 있다. 그런데 BMW M760Li x드라이브는 약간 다른 방식의 놀라움을 선사한다. 제원부터가 그렇다. 무게 2.2톤, 길이 5.2미터가 훌쩍 넘는 초대형 세단의 0→시속 100킬로미터 가속 시간이 3.7초다. 현재 BMW의 양산차 중 가장 빠른 가속이다. 이 크고 무거운 롱휠베이스 세단의 빠름의 근원은 V12 엔진이다. 내연기관이 종말을 맞이하고 있는 시대에 12기통 엔진은 인류가 누리는 마지막 사치나 다름없다. 때문에 지금은 슈퍼카 메이커와 럭셔리 브랜드 등 극히 일부에서만 사용하는 귀한 물건이 됐다. M760Li의 6.6리터 V12(N74B66)는 롤스로이스 고스트와 레이스가 사용하는 엔진이다. 최고출력만 610마력으로 줄었을 뿐이다. 브랜드 가치에 따른 차별화지만 노여워할 필요는 없다. 롤스로이스의 절반 정도 가격(2억2330만원)에 같은 엔진을 쓰는 거니까. 

브레이크와 가속페달을 동시에 밟으면 에어서스펜션이 수축되면서 차체가 덜컥하고 내려간다. 이 상태를 조금 유지하면 계기반에 신호가 뜬다. ‘이런 차에 왜 론치컨트롤이 필요한지 누가 속 시원하게 설명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은 왼발을 떼면서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린다. 어쩌면 내가 아주 편하게 안드로메다로 날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노즈 들림은 생각보다 크지 않고 몸이 시트에 파묻히는 느낌도 적다. 배기음은 저 멀리서 그윽하게 들려오고 타이어 구르는 소리도 여러 번 정제돼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 BMW에서 가장 비싼 세단은 풀스로틀 상태에서도 예의 고고한 움직임을 흐트러트리지 않았다. 여기 모인 다른 차들은 지금 자기가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바락바락 소리를 치며 알리는데 M760Li엔 그런 경박함(?)이 없다. 그래서 ‘내가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오래가지 못한다. 이 차는 3.7초 만에 시속 100킬로미터에 도달하니까. 

여러 번의 테스트에서는 4.48초가 나왔다. 시속 55킬로미터에서 2단으로 변속하고 시속 95킬로미터 부근에서 3단으로 변속하며 시속 100킬로미터에 도달했다. 변속은 매끄럽고 가속 지연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계측 그래프를 보면 변속할 때마다 약간의 지연이 있다. 변속 시간이 느린 것보단 토크컨버터에서 생긴 동력 손실이다. 듀얼클러치 변속기를 사용하는 페라리와 AMG의 가속 곡선은 아주 매끄럽다.고성능 럭셔리 리무진 시장은 메르세데스 벤츠(AMG)와 아우디 정도만 경쟁하고 있었다. BMW는 뒤늦게 발을 들이며 ‘제로백’이라는 카드를 들이밀었다. 이렇게 큰 차가 왜 이렇게 빨리 달려야 하는지는 충남 보령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160킬로미터의 거리는 내게 한두 번은 쉬어 가야 할 거리(몸뚱이가 비루하다)지만 M760Li를 탔을 때는 한 번도 쉬지 않고 빠르게 달렸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BMW에서 가장 비싸고 빠른 차는 세상에서 스트레스 없이 가장 빨리 달리는 차일지 모른다’고. 글_이진우

 

MT RATING
너무 쉽고, 빠르고, 안락하다. 계기반이 느린 것은 흠. ★★ 나윤석
고요한 실내와 무자비한 피칭, 그리고 고장난 시계처럼 휙휙 돌아가는 속도계의 조합. 테슬라 모델 S에서 느꼈던 아노미를 다시 경험했다. ★★★★ 강병휘
이런 성격의 차는 성능과 승차감의 균형점을 찾기가 참 어렵다. BMW도 완전한 해답을 얻지는 못한 느낌이다. 가속은 시원통쾌하지만, 무게의 굴레를 떨쳐버리지 못한 것이 아쉽다. ★★★☆ 류청희
우아한 가속에 반했다. 운전자는 보닛 아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필요 없다. 그저 3.7초 만에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릴 수 있으면 그만이다. 이건 럭셔리 세단이 아닌가? ★★★☆ 류민 


BURN OUT!
왼발로 브레이크, 오른발로 풀스로틀. 번아웃은 간단하다. 그들은 왜 번아웃을 할 수 없었나?“우린 듀얼클러치 변속기를 써. 브레이크를 밟고 정차하고 있으면 클러치를 떼어줘야 시동이 꺼지지 않아. 반 클러치 상태는 오직 론치컨트롤에서만 유지해. 우린 빠른 가속을 위해 뒷바퀴 슬립 제어 기술을 수년간 단련했어. 그런데 이제 와서 타이어를 헛돌게 하라고?” 페라리와 메르세데스 AMG“난 사륜구동이야. 타이어가 헛돌면 재빨리 토크를 다른 쪽으로 몰아주는 게 정의라고 배웠어. 두 바퀴만 헛도는 건 죄악이야.” BMW“난 앞쪽이 좀 가벼워. 아무것도 없거든. 엔진은 뒤쪽에 있어. 그러니까 무게 때문에 뒤 타이어의 접지 한계가 높아. 이런 구조에서 뒷바퀴를 미끄러뜨리기도 힘들지만 진짜 문제는 뒷바퀴 힘에 질질 밀려 나갈 정도로 허약한 앞 타이어야.” 로터스  

글_강병휘

 

헤드램프 아래 공기흡입구 안에 인터쿨러가 들어 있다. M760Li x드라이브의 성격을 알 수 있는 단서다. 과거에 이런 구조는 고성능 스포츠카들에서나 볼 수 있었다. 

M760Li x드라이브는 유일한 사륜구동 모델이었다. 아주 빠르고, 쉽고, 고급스러웠다. 참가차 중 가장 강력한 최대토크를 자랑했지만 이보다 더 큰 특징은 엔진 스트레스를 감안해 최고출력을 리터당 100마력이 채 안 되게 뽑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보어와 스트로크가 거의 같은 스퀘어 엔진에 사륜구동 시스템을 맞물려 초기 가속이 굉장히 빠르다. 계측 결과 시속 20킬로미터까지의 가속이 참가차 중 가장 빠른 0.75초를 기록했다. 그러나 그래프에서 시속 55킬로미터와 95킬로미터 근처, 즉 기어를 바꿀 때마다 가속도가 떨어지는 것이 보인다. 이는 기록을 희생하면서 변속 충격을 최소화해 ‘럭셔리 리무진’의 가치를 중시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재미있는 건 디지털 계기반의 태코미터 바늘이 엔진의 실제 회전 상승 속도를 따라오지 못한다는 점이다. 실측 기록은 4.48초로 제원표의 3.7초와는 차이가 꽤 난다. 
글_나윤석 

 

 

3.9 SEC, V6 Supercharger, 1.16ton, 10.4km/ℓ

LOTUS EXIGE S CR

엑시지 S CR(클럽 레이서)은 엑시지 S를 한층 더 날카롭게 다듬은 버전이다. 하지만 파워트레인은 달라진 것이 없다. 엑시지 S처럼 토요타에서 가져온 V6 3.5리터에 슈퍼차저를 더한 엔진을 얹고 있다. 시승차에는 옵션인 IPS(Intelligent Precision Shift) 6단 자동변속기가 들어 있다. IPS라는 이름이 꽤 그럴싸하지만 내용물은 토요타가 V6 3.5리터 엔진에 주로 사용하는 아이신 6단 자동변속기와 큰 차이가 없다. 물론 엔진과 변속기 모두 로터스가 스포티하게 다듬었다. 이는 자체 엔진을 사용한 적이 없는 로터스의 전통이기도 하다.‘클럽 레이서’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몇몇 변화에도 로터스의 철학이 반영돼 있다. 엔진 출력은 그대로 두고 무게를 줄이고 공기역학 특성만 개선해 성능을 높인 것이다. 앞 범퍼 아래와 뒤 데크 위에 스포일러를 붙이고 차체 바닥을 평평하게 만들어 다운포스를 높였으며 센터콘솔, 도어, 시트, 배터리 등을 가벼운 것으로 바꿔 무게를 15킬로그램 줄였다. 엑시지 S와 다른 점을 하나하나 짚어보면 서킷 주행에 맞춰 고속 코너링 한계를 높이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이번 시승의 주제인 0→시속 100킬로미터 가속시간과는 별 상관이 없는 변화다.로터스와 자동변속기의 조합이 왠지 어색한 것은 선입견 때문이다. 자동변속기는 발진 가속을 계측할 때 실수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제원상 자동변속기가 수동변속기보다 0→시속 100킬로미터 가속을 0.1초 빠른 3.9초 만에 마친다. 스티어링휠 뒤에 패들시프트가 있긴 하지만 변속기의 판단을 믿고 가속페달만 힘껏 밟기로 했다. 대신 빠른 가속 반응과 접지력 확보를 위해 DPM(Dynamic Performance Management) 다이얼을 돌려 주행 모드를 스포츠로 설정했다.출발선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진행 방향 주변이 정리되길 기다리며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마음속으로 하나, 둘, 셋을 세고 브레이크 페달에 있던 오른발로 가속페달을 박찼다. 집중을 하면 시간이 천천히 가는 것처럼 느껴지기 마련. 변속기가 엔진으로부터 넘겨받은 토크를 바퀴로 온전히 넘겨주기 시작할 때까지 짧은 머뭇거림이 느껴졌다. 그러나 이는 이내 힘찬 가속으로 바뀌었다. 야구공이 타자가 휘두른 배트에 맞았을 때 탄력을 받아 날아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물론 이 모든 것은 1초도 안 되는 순간에 이루어지는 일들이다. 이어지는 과정도 모두 순식간에 지나갔다. 짧은 시간 동안 7000rpm 가까이 솟구친 엔진 회전계 바늘은 기어가 2단으로 올라가면서 5000rpm 부근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2단으로 바뀌고 나서도 회전 상승은 더뎌지지 않았고 엑시지 S CR은 이내 시속 100킬로미터를 넘어섰다. 기어는 여전히 2단. 엔진 회전수는 6000rpm을 훌쩍 넘겨 7000rpm을 목전에 둔 상태였다. 요란하기보다는 힘차게 느껴지는 배기음도 방음 처리가 되지 않은 실내에 울려 퍼지며 온몸을 자극했다.슈퍼차저는 고회전으로 갈수록 효율이 떨어진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공기저항을 더 많이 받는 고속이라면 모를까,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킬로미터에 이르는 짧은 순간에서는 몸으로 느낄 정도로 뚜렷하지는 않다. 오히려 회전수를 높여도 상체를 누르는 가속도가 전혀 수그러들지 않는다. 등받이 쿠션이 얇은 버킷 시트 덕분에 마치 등이 쿠션이 된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참가차 중 무게는 가장 가볍지만 움직임은 그렇지 않다. 빠른 가속에도 차체 앞쪽이 거의 들리지 않고 스티어링휠을 통해 느껴지는 앞바퀴의 감각도 듬직하다. 노면에 거의 달라붙은 채로 속도만 치솟을 때의 기분은 아주 절묘하다.브레이크를 밟으면 변속기는 빠르게 줄어드는 속도에 맞춰 회전수를 보상하며 기어를 내려문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킬로미터에 도달하고 다시 멈춰 서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7초 남짓. 당연한 이야기지만, 풀 브레이킹을 하지 않아도 차가 속도를 줄이는 시간은 가속할 때보다 훨씬 더 짧다.엑시지 S CR에서는 변속이 빠르고 치밀한 변속기, 탄탄한 토크를 바탕으로 힘찬 가속을 이끌어내는 엔진, 무게를 잊게 만드는 서스펜션의 움직임, 끈끈한 접지력 등이 인상적이었다. 함께 달린 다른 차들과 비교해도 전혀 아쉬울 것이 없는 가속 성능과 감각을 주는 엑시지 S CR에게는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이 딱 어울린다. 
글_류청희(자동차 평론가)

 

MT RATING
레이싱카 같은 가속감, 레이싱카 같은 승하차. 아, 힘들다. ★★★☆  나윤석
가속하는 내내 운전자의 신경을 파고들며 아주 맹렬하고 짜릿하게 속도를 높였다. 비록 기록은 488 GTB와 AMG GT S에 뒤졌지만 감성적 만족도는 단연 최고. ★★★★★ 강병휘
‘V6 엔진으로 용쓴다’고 생각했다가 큰코다칠 뻔했다. 무게가 성능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실감케 한다. 더불어 이날 모인 차들 중 사운드도 가장 박력 넘쳤다. ★★★★ 이진우
가슴을 후벼 파는 사운드와 짜릿한 진동. 이렇게 생생한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차는 흔치 않다. 뭐, ‘제로백’ 따위가 중요한가? ★★★★ 류민

 

ROCKET START!
참가차 중 세 대는 론치컨트롤을 지원했다. 사용법은 다음과 같다.

MERCEDES-AMG GT S
1 드라이브 모드를 레이스 이상으로 바꾸고 ESP를 꾹 눌러 스포츠 핸들링 모드를 켠다.2 왼발로 브레이크 페달을 밟고 양쪽 패들시프트를 모두 당기고 기다린다.3 계기반에 론치컨트롤 표시가 뜨면 패들시프트를 놓는다.4 오른쪽 패들시프트를 한 번 당긴다. 5 오른발로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고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뗀다. 

BMW M760Li xDrive
1 ESP 버튼을 누른다. 계기반에 ‘TRACTION’이 뜨고 ‘DSC OFF’ 경고등이 켜진다.2 변속레버를 S로 바꾼다.3 왼발로 브레이크 페달을 밟은 후 오른발로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는다.4 계기반에 깃발 기호가 나타나면 준비 끝. 3초 이내에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뗀다.

FERRARI 488 GTB
1 마네티노(드라이브 모드)를 ESP 오프로 돌린다.2 변속기를 수동 모드로 바꾸고 1단 기어를 물린다.3 PS 버튼을 누른다. 4 왼발로 브레이크 페달을 밟고 오른발로 가속페달을 밟는다. 5 엔진이 급출발에 적당한 회전수를 유지한다. 6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뗀다.

 

로터스가 온다기에 레이싱 글러브를 챙겨왔다. 그런데 이게 웬걸, 자동변속기 모델이었다. 자동변속기 모델의 가속이 더 빠르다나?

 

GT S와 함께 2단에서 시속 100킬로미터를 찍은 의외의 모델이다. 최고출력은 참가차 중 가장 낮았지만 1.2톤이 되지 않는 가벼운 무게 덕분에 마력당 무게비는 최고 수준이었다. 즉, 오늘 모인 모델들 가운데 가장 레이싱카와 비슷한 감각을 가졌다는 뜻이다. 물론 구성과 감각이 그러하니 운전 스킬도 필요하다. 가속페달을 꽉 밟으면 앞머리가 들리고 뒷바퀴가 헛돌기 때문에 세심한 컨트롤이 요구된다. 하지만 일단 출발한 뒤에는 총알같이 튀어나간다. 그래프의 기울기를 보면 알 수 있듯, 엑시지 CR은 참가차 중 가장 강력한 가속도(0.946)를 기록했다. 재미있는 건 2단으로 변속되는 시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그래프가 매끈하다는 점이다. 시속 80킬로미터 부근부터 발견되는 가속도의 둔화는 출력 한계 때문으로 보인다. 글_나윤석

 

 

3.9 SEC, V6 Twin Turbo, RWD, D Segment Sedan

CADILLAC ATS-V

‘제로백’ 3초대의 고수들이 모이는 기획에 참가하게 됐다. 그런데 출전 선수 리스트에서 미국 선수가 보였다. 주인공은 바로 캐딜락 ATS-V. ATS-V는 다섯 대의 선수 중 가장 문이 많고 엔진 실린더 수가 가장 적었다. 누가봐도 불리한 조건. 그럼에도 난 이놈의 키를 집어 들었다. 3초대에 겨우 턱걸이한 녀석에게 기특함을 느껴서 그랬던 것 같다. 

시승차를 받고선 가장 먼저 뒤 타이어를 살폈다. 미쉐린 파일럿 슈퍼 스포츠였다. 콤파운드는 더할 나위 없었으나 불리함을 조금이나마 극복하기 위해 공기압을 약간 줄일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공정한 비교를 위해 그대로 두었다. 계측 전 담당 에디터가 공기압을 측정하는 것을 보고 손대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생각했다. 기어비를 살펴보니 아쉽게도 3단에서 시속 100킬로미터를 찍는다. 즉, 변속을 두 번 마무리해야 한다는 뜻. 주행 모드를 스포츠나 트랙으로 바꿔도 기어를 갈아타는 속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노면 상태는 별로였다. 타이어 잔재와 돌가루가 적지 않았다. 오늘 모인 선수들이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긴 어렵겠다. 스타트 라인에서 브레이크와 가속 페달을 동시에 밟았다. 론치컨트롤이 작동 중이라는 표시는 없었다. 엔진 회전수가 1700rpm으로 고정되며 터보차저를 긴장시키고 있을 뿐. 듀얼클러치 변속기를 쓰는 경쟁자들이 제대로 된 론치컨트롤을 지원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양손을 차가운 마그네슘 패들시프트에 살짝 올려두고 스타트! 뒤 타이어 옆구리가 조금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이내 끈끈한 접지력으로 노면을 장악했다. 동시에 내 몸과 레카로 시트 사이 빈 공간도 압착되기 시작했다. 꽤 무겁고 무게중심이 높은 차체임에도 피칭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뒤 타이어가 희미하게 소리를 내긴 했지만 오직 최소한의 슬립만을 허용했다. 부스트가 제 궤도를 찾아가는 과정도 없었다. 아주 균일한 힘으로 내달렸다. 서 있는 운전석에서 달리는 운전석으로 순간 이동한 듯한 감각이었다. 계측 결과를 보고 알 수 있듯, ATS-V는 정지 상태에서 가속을 시작할 때 그래프의 기울기를 일정하게 유지한 유일한 모델이다. 변속 속도는 빠른 편이다. 같은 방식(토크컨버터)을 쓰는 차들의 평균 변속 시간을 밑돈다. 가령 그날 ATS-V와 맞붙었던 BMW 760Li x드라이브나 로터스 엑시지 S CR보다 기어를 빠르게 갈아탔다. 최신 고성능 모델은 스포츠 모드에서 인위적인 변속 충격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엉덩이를 살짝살짝 흔들긴 하지만 ATS-V는 그들과 달리 신사가 중절모를 고쳐 쓰듯 부드럽게 변속했다. 

2단 기어에서도 힘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0.9초마다 바늘을 시속 20킬로미터씩 밀어 올렸다. 이런 일정한 가속은 시속 80킬로미터까지 이어졌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가속 감각은 자연흡기 엔진만의 감성으로 여겨졌다. 때문에 최신 과급 엔진의 완성도가 얼마나 높아졌는지 새삼 깨달았다. 2단 기어에 들어서면서 엔진 사운드도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건 4000rpm을 넘어서며 엔진 사운드는 커지지만 배기 사운드는 오히려 차분해진다는 점이다. 

이제 3단으로 갈아탈 시점. 변속을 위해 난 다시 집중했다. 레드존은 6500rpm부터지만 그전에 패들을 당겼다. ATS-V의 V6 3.6리터 트윈터보 엔진은 5750rpm에서 최고출력을 찍고 5800rpm부터 토크 곡선이 급격히 하강한다. 속도계의 ‘100’이라는 숫자를 최대한 빨리 찍는 게 목표라 최대토크에 승부수를 띄워보기로 했다.

영원처럼 느껴지는 그 변속의 찰나를 거쳐 3단 기어가 단단하게 물렸고 이전보다 중력가속도가 살짝 줄어든 것을 느꼈다. 그제야 난 차체 무게와 크기, 그리고 공기저항을 무시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드디어 계측기가 “삑” 하는 소리로 0→시속 100킬로미터 계측을 마쳤음을 알렸다. 결과는 4.75초. 회전 한계를 다 쓰고 변속한 경우(4.9초)보다 5500rpm 부근에서 변속하는 게 더 빨랐다. 이런 특징마저 사라져가는 스몰 블록 V8 엔진과 참 닮았다. 비록 가장 느린 수치를 기록했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ATS-V는 오늘 모인 선수 중에서 유일하게 번아웃을 멋지게 해내는 녀석이었으니까. 글_강병휘(자동차 칼럼니스트)

 

MT RATING
터보 엔진 같지 않은 출력 특성이 호쾌하다. 느려도(?) 재미있다. ★★★ 나윤석
미국 머슬카의 허술함 대신 유럽 스포츠 세단의 색깔을 추구한 것은 알겠지만, 그렇다고 미국색이 완전히 지워지지는 않았다. 좋은 차지만, 어느 쪽으로든 짜릿함을 더하면 좋겠다. ★★★☆ 류청희
나는 왜 이 차가 뒤를 한두 번 털고 어쩔 줄 모르다 미친 듯이 달려 나갈 것이라 생각했을까? 과거 미국산 V8의 잔상 때문일까? 생각보다 얌전히 가속한다. ★★★ 이진우
계측 결과가 가장 실망스러웠다. 가속감각도 그리 인상적이지 못했다. 그래도 엉덩이를 살랑거리며 힘껏 가속하는 모습은 꽤 섹시했다. ★★★ 류민

 

ATS-V의 보닛에는 공기배출구가 있다. 라디에이터 그릴과 범퍼의 공기흡입구를 통해 들어온 공기를 빠르게 빼내 차체 앞쪽의 양력을 낮춘다. 시속 300킬로미터를 넘나드는 고성능 콤팩트 세단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장치다. 


ATS-V는 마력당 무게비에서 가장 불리했다. 그러나 이는 휠스핀 걱정이 가장 적다는 이야기도  된다. 그래프를 보면 주저하지 않고 출발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시속 20킬로미터까지 도달 시간은 0.85초. 막강한 토크와 사륜구동 시스템의 M760Li x드라이브와 최강의 마력당 무게비를 자랑하는 488 GTB의 뒤를 이어 3위를 기록했다. 쇼트 스트로크 엔진이라 회전 상승이 빠른 편이고 변속기도 민첩해 변속 시점의 그래프가 매끈하다. 하지만 계측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최신 터보 엔진들과는 달리 3500rpm에서 최대토크를 발휘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이런 이유로 고회전 영역, 특히 변속 직후에 헛도는 현상이 발생했다. 레드존에서 변속하면 회전수가 최대토크 발생 지점인 5000rpm 부근으로 떨어지기 때문. ATS-V는 레드존 이전에 변속할 때 더 좋은 기록을 냈다. 참고로 시승차의 브레이크 상태가 좋지 않아 제동 성능은 측정할 수 없었다.
 글_나윤석

 

 

3.0 SEC, V8 Twin Turbo, 7 DCT, MR, 670Hp 

FERRARI 488 GTB

“3초대요? 뭐가 있지…. 확인하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조금 이상하다 싶었다. 기획을 준비하며 응당 페라리가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페라리에 ‘제로백’ 3초대 차를 요청했는데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페라리는 대부분 3초대일 텐데?’ 나중에 안 이유가 조금 황당하다. 페라리 대부분이 이제 2초대에 진입하고 있어서 그랬단다. 페라리 홍보담당자는 ‘제로백’을 3초에 찍는 488 GTB를 준비해두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아, 겨우 3초대네요. 2초대는 안 되는거죠?” 농담이었겠지만 내겐 이 한마디가 최신 슈퍼스포츠카의 성능을 요약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3초대에 경악했던 게 어제 같은데 벌써 2초대가 자연스러운 세상이 됐다.

뭐, 생각해보니 페라리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꽤 많은 ‘승용차’들이 3초대에 진입하기 시작했으니까. 이번에 불러낸 BMW M760Li x드라이브와 캐딜락 ATS-V가 좋은 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차들이 ‘제로백’을 3초대에 끊으리라고 상상이나 했던가. 메르세데스 AMG E 63 S 4매틱+ 같은 차는 사륜구동과 후륜구동을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612마력의 힘을 바탕으로 ‘제로백’을 3.4초 만에 끝내면서 드리프트까지 한다. 성능에 대한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페라리가 이런 걸 보며 가만히 있을 리 없다. 

488 GTB는 터보화를 거치며 출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이전 모델의 최종 진화형인 458 스페치알레에 비해 65마력, 22.5kg·m 더 많은 670마력, 77.5kg·m의 힘을 낸다. 그런데 488 GTB는 이 막대한 힘을 모두 뒷바퀴에 전달하고 있다. 아무리 미드십이라도 후륜구동의 물리적 한계로 여겨지는 ‘600마력, 70kg·m’를 넘어 접지력을 확보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일반도로용 타이어와 3000rpm에서 최대토크를 쏟아내는 터보 엔진이라면 이야기는 더 심각해진다. 

페라리는 엔진 토크를 상황에 맞게 제어하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저회전·저단 기어에서 의도적으로 토크를 낮춰 구동 손실을 줄이고 힘이 점진적으로 치솟는 듯한 감각을 강조했다. 계측 그래프를 보면 플랫 토크 구간에서 변속 시점과 상관없이 가속도가 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488 GTB는 최대토크를 7단 기어에서만 내뿜는다. 7단 기어는 일반 도로에서 크루징을 위해 사용될 뿐, 스포츠 주행에는 큰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토크 제어나 이에 따른 가속도 변화 따위는 제원표와 계측 데이터 정도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488 GTB의 실제 가속은 이런 것과 상관없이 시종일관 폭력적이다. 나는 488 GTB의 운전석에서 등을 떠미는 격렬한 힘과 귓가를 때리는 터보차저의 회전음, 그리고 지금껏 경험치 못한 기세로 몰려오는 풍경에 완전히 압도당했다. 그 3초 남짓한 순간은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긴박했고 또 짜릿했다. 488 GTB의 회전 한계는 8000rpm. 하지만 변속은 7500rpm 부근에서 이뤄졌다. 

2단 7300rpm에서 시속 84킬로미터를 찍은 후 3단 6500rpm 부근에서 시속 100킬로미터를 넘겼다. 서킷에서의 랩타임을 조금 양보하고 기어비를 조정했다면 ‘제로백’은 물론 0→시속 200킬로미터 가속 기록도 훨씬 단축됐을 것이다. 488 GTB의 최종감속비는 출력에 비해 극도로 짧은 편이다. 488 GTB의 ‘제로백’ 계측 결과는 3.63초였다. 제원상의 수치를 밑도는 건 노면 상태 탓이 컸다. 여러 번의 계측에서 488 GTB는 최대토크가 나오는 3000rpm 부근에서 트랙션을 반복적으로 잃었다. 참가차 중 물리적인 접지력이 가장 높았지만 마력당 무게비도 가장 낮은 까닭에 벌어지는 현상이었다. 0→시속 100킬로미터 가속 시간을 계측하다 나는 488 GTB에게 괜스레 미안해졌다. 이 아이를 부르려면 적어도 0→시속 200킬로미터나 0→400미터 정도는 했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488 GTB는 불평 한번 하지 않았다. 수십 번 반복한 발진 가속을 한결같은 컨디션으로 소화했으며 유일하게 실측 3초대를 기록하며 우리를 즐겁게 했다. 글_류민

 

MT RATING
시속 200킬로미터로 하자. 0→시속 100킬로미터 가속은 너무 쉽다. ★★★★★ 나윤석
‘듣는 즐거움’이 사라진 F1처럼, 488 GTB도 귀는 만족시키지 못한다. 그 대신 나머지 모든 면에서 완벽에 가까운 가속의 즐거움을 안겨준다. 대단하다. ★★★★☆ 류청희
실측 결과에서도 유일하게 3초대를 기록하며 위엄을 뽐냈다. 변속이 빠르면서도 충격은 거의 없어 감성보다 기록을 중시하는 머신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 강병휘
‘페라리니까 당연히 빨라야지’라는 우리 모두의 생각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아주 가뿐하게 증명했다. 0→시속 200킬로미터 가속 시간을 쟀다면 다른 차들과의 차이는 훨씬 더 크게 벌어졌을 것이다. ★★★★★ 이진우

 

터보 엔진을 달면서 뒤 펜더에 엄청난 크기의 공기흡입구가 생겼다. 인터쿨러를 식히면서 엔진에 더 많은 공기를 공급하기 위한 조치다. 페라리가 뒤 펜더를 이렇게 과감하게 잘라낸 건 512 TR 이후 처음이다.


계측 결과 3초대를 기록한 유일한 모델이다. 저단 기어에서 토크를 제한하는 영리한 제어시스템 덕분에 좋은 기록을 냈다. 만약 77kg·m의 토크가 1단부터 쏟아져 나왔다면 출발선에서 트랙션 컨트롤과 싸우며 많은 시간을 까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488 GTB는 아주 짧은 휠스핀만을 남기고 경쾌하게 출발했다.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 488 GTB는 풀 가속 구간에서도 접지력이 대단했다. 변속에 따른 손실도 거의 없다. 이 정도의 마력당 무게비를 가진 모델이라면 충분히 2단에서 시속 100킬로미터를 찍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페라리는 이를 포기하고 짧은 기어비를 선택했다. 0→시속 100킬로미터 가속시간보단 서킷에서의 기록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엑시지 S CR이 2단부터 6단까지 각 기어의 최고속도 차이가 시속 40킬로미터 전후인 것처럼 488 GTB도 2~3단 시속 30킬로미터, 4~6단 각 시속 40킬로미터로 일정하게 나눠두었다. 
글_나윤석 

 

 

1 MERCEDES-AMG GT S
속도계 가운데의 카본 패턴과 시속 360킬로미터라는 숫자가 운전자를 압도한다. 하지만 폰트는 아주 귀엽다. AMG 고유 폰트인데 간결해서 시인성이 뛰어나다. 0부터 240까지는 간격이 일정하다가 이후부터는 좁아진다. 시속 240킬로미터까지는 가속력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시속 100킬로미터까지는 어떠냐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거침없이 치솟는다. 

2 BMW M760Li xDrive
속도계 바늘을 ‘발딱’ 세우려면 시속 200킬로미터를 찍어야 한다. 그래서 경쾌한 맛이 조금 떨어진다. 하지만 바늘의 움직임이 더없이 우아하다. 바늘이 지나간 자리엔 빨갛게 흔적이 남는다. 속도를 높이면 속도계 전체를 붉게 물들일 수 있다. 디스플레이 위에 구현한 디지털 계기반이라 가능한 효과다. 그러나 태코미터 바늘이 실제 엔진 회전수를 따라오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3 LOTUS EXIGE S CR
가속의 쾌감은 엑시지 S CR이 가장 강했다. 하지만 계기반은 가장 심심했다. 운전자를 시트에 처박는 강렬한 감각에 어울리지 않게 밋밋한 디자인이다. 물론 바늘의 움직임은 격렬하다. 가속페달을 밟는 순간 엄청난 기세로 치솟는다. 사실 엑시지 S CR은 계기반이 필요 없는 차다. 빠르게 다가오는 코너를 바라보며 등 뒤에서 내지르는 엔진의 울음소리를 듣고 감각적으로 상황에 맞는 기어를 선택하며 타는 퓨어 스포츠카이기 때문이다. 

4 CADILLAC ATS-V
참가차 중 0에서 100 사이가 가장 가깝다. 때문에 속도계 바늘이 느리게 움직인다. 계측 당일 변속할 때마다 타이어가 그립을 잃었는데 치솟지 않고 멈칫거리기만 했다. 폰트가 비스듬히 누워 있어 바늘이 숫자를 더 빠르게 지나치는 것처럼 보인다. 완벽한 반원이지만 ‘제로백’을 3초대에 끊는 고성능 모델답게 시속 330킬로미터까지 표시되어 있다. 

5 FERRARI 488 GTB
488 GTB의 계기반 가운데엔 거대한 태코미터가 자리한다. 속도는 숫자로 표시한다. 속도보단 엔진 회전수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서킷이 고향인 페라리답다. 태코미터 바늘은 가속페달을 밟으면 맹렬히 날뛴다. 계측을 진행한 날 가장 바쁘게 움직였던 바늘이 바로 이 바늘이다. 일단 레드존 근처에 다다르면 6200rpm에서 7500rpm 사이를 바쁘게 움직이며 속도를 높인다. 
글_김선관 

 

 

1 MERCEDES-AMG GT S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 시스템캘리퍼 앞 6, 뒤 4 피스톤디스크 직경 앞 402mm, 뒤 360mm컨티넨탈 컨티스포츠컨택 5P 앞 265/35R19, 뒤 295/30R20

2 BMW M760Li xDrive
스틸 브레이크 시스템캘리퍼 앞 4, 뒤 1 피스톤디스크 직경 앞 395mm, 뒤 398mm브리지스톤 포텐자 S001 앞 245/40R20, 뒤 275/35R20

 3 LOTUS EXIGE S CR
스틸 브레이크 시스템캘리퍼 앞 4, 뒤 4 피스톤디스크 직경 앞 332mm, 뒤 332mm피렐리 P제로 코르사 앞 205/45R17, 뒤 265/35R18

 4 CADILLAC ATS-V
스틸 브레이크 시스템캘리퍼 앞 6, 뒤 4 피스톤디스크 직경 앞 370mm, 뒤 339mm미쉐린 파일럿 슈퍼스포츠 앞 255/35R18, 뒤 275/35R18

5 FERRARI 488 GTB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 시스템캘리퍼 앞 6, 뒤 4 피스톤디스크 직경 앞 398mm, 뒤 360mm피렐리 뉴 P제로 앞 245/35R20, 뒤 305/30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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