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차와 수퍼카
수퍼카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에는 오직 두 종류의 자동차만이 존재한다.
그것은 ‘보통차’와 ‘수퍼카’이다. 즉 수퍼카가 아닌 모든 종류의 자동차들은 보통차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수퍼카는 어떤 차일까? 물론 모든 수퍼카들은 고성능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자동차라는 상식을 뛰어넘을 만큼 고성능이고,
당연히 높은 수준의 기술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보통차는 만들기 쉬운 차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불행하게도 보통차 역시 ‘잘’ 만들기가 상당히 어렵다.
그것은 많은 요구사항과 무엇보다도 ‘실용성’이라는 기준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어떤 것은 100점, 어떤 것은 0점을 얻기보다, 모든 부분에서 골고루 80점 정도의
성적을 얻기가 훨씬 더 어려울지 모른다.
그렇다면, 고성능만을 가진다고 수퍼카가 되는 것일까? 그러나 이 역시 그렇지 않다.
수퍼카에게 고성능 이외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우리들의 ‘피를 끓게 하는’ 그 어떤 것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과연 피를 끓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지오토 카스피타, 1989년
지금부터 약 이십여 년 전에 일본의 어느 기업가(물론 그는 자동차 메이커를 운영하는
사람은 아니었다)가 일본제 수퍼카를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일본 내에 있는
기술자들을 모아서 후지중공업(스바루)의 수평대향 고성능 엔진을 얹은 차를 만들었다.
물론 그의 계획대로 그 프로토타입은 막강한 성능의 지오토 카스피타라(Jiotto Caspita)는
이름의 수퍼카로 완성됐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이상하게도, 심지어 일본 사람들조차도 그 차에 감동하는 사람이 없었다.
물론 지금도 그 차에게서는 별다른 감흥이 생기질 않는다.
왜 그럴까? 그것은 앞서 말한 ‘피를 끓게 하는’ 그 무엇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차는 그저 매끈한 스타일에 고성능 엔진을 얹었을 뿐, 그 이상 아무 것도 없었다.
수퍼카는 어쩌면 엔진으로만 움직이는 게 아닌지도 모른다.
사실상 수퍼카를 살아있도록 만드는 것은 엔진이 아니라, 그 차가 가지고 있는 열정일 것이다.
단명했던 일본제 수퍼카는 차를 만들겠다는 의욕은 있었지만, 달리기 위한 ‘열정’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페라리’와 ‘람보르기니’ 두 메이커는 그 이름만으로 다른 메이커 차들을 압도한다.
도대체 이들이 이토록 막강한 위력을 가지게 하는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물론 이들 두 메이커의 차들은 고성능이다.
우리가 거리에서 만나는 ‘보통의 차’들과는 다른 초 고성능에, 기이하다고 할 정도로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이들의 차들은 멋지다. 그런데 이 차들이 멋진 이유는
고가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이들 모두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와 시저
혹자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자동차 만들기에 대해서 ‘잘 달리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밖에 할 줄 모른다’는 혹평(?)을 하기도 했다.
왜 그들은 그런 차를 만들 수 있는 걸까? 그런데 역사를 보면 거장 미켈란젤로와
영웅 시저 모두가 그들의 조상이 아닌가?
시저의 용맹과 미켈란젤로의 예술적 직관이 오늘날 우리들의 피를 끓게 하는
페라리와 람보르기니라는 ‘달리는 조각품’을 만들어 낸 것인지도 모른다.
미켈란젤로 보나로티
줄리어스 시저
그런데 페라리와 람보르기니 이들 두 ‘조각품’들의 성격은 판이하게 다르다.
주목되는 점은 이들의 스타일 감각은 창업자의 성향이나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페라리의 창업자 엔초 페라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1947년부터 페라리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는 페라리를 만들기 이전에는 피아트와 알파로메오의 테스트 드라이버와
레이서로써 활동했지만, 페라리 창업 후에는 직접 핸들을 잡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의 성격은 타협을 모르는 고집불통이었다고 한다. 물론 그랬기 때문에,
독특한 색채를 잃지 않은 페라리가 나온 것인지 모르지만,
그 시기에 페라리의 차들은 더러는 기구적으로 불완전하기도 했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러한 페라리의 불완전성 때문에 또 다른 수퍼카
람보르기니가 탄생했던 것이기도 하다.
람보르기니의 창업자 페루초 람보르기니는 농기구와 트렉터를 만드는 사업을 했었는데,
그가 산 페라리의 클러치에 문제가 생겨, 그것을 따지기 위해 엔초를
찾아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하자, 그에 대한 복수심으로 페라리를 능가하는
스포츠카를 만들 결심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람보르기니’의 의지는 메이커 심벌에서도 잘 나타나는데,
페라리가 ‘뛰어오르는 말’인데 비해, 람보르기니는 ‘성난 황소’이다.
물론 지금의 람보르기니는 독일 아우디의 기술로 만들어진다.
페라리와 람보르기니
수많은 페라리들 가운데서 가장 페라리다운 스타일을 찾으라면, 쉬운 일은 아니다.
그것은 모두다 세련되고 우아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들 중에서도 1978년에 발표된 308GTO가 가장 백미(白眉)라고 느낀다.
이 모델은 페라리 특유의 바디 컬러 이탈리안 레드(Italian Red)가 가장 잘 어울림과
아울러 페라리의 우아함과 고성능을 잘 표현한 페라리의 대표 모델이다.
물론 이외에도 다양한 차종으로 페라리가 그 이름 값을 해왔다면,
람보르기니는 1971년에 발표한 쿤타치(Countach) 모델이 수퍼 스타의 자리를 지켜왔다.
물론 쿤타치 이전에 미우라(Miura) 역시 절대 잊혀질 수 없는 모델이지만,
쿤타치가 사람들에게 안겨준 충격은 최초 등장 이후 정확히 4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퇴색되지 않는다.
1978년형 페라리 308GTO
1971년형 람보르기니 쿤타치
우리나라에는 ‘카운타크’라는 약간 이상한 발음으로 알려진 ‘쿤타치’는
이태리어로 ‘저것이다(That's it!)’의 의미라고 한다.
쿤타치는 그 당시 람보르기니의 차체 디자인을 담당한 베르토네 스튜디오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거장 마르첼로 간디니의 손에서 태어났는데, 마치 장갑차나 UFO를 보는 듯한
기하학적인 형태로써, 페라리의 우아한 이미지의 조형감각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모습이다.
두 메이커 수퍼카와의 조우(遭遇)
필자가 이렇게 대조적인 성격의 두 메이커의 수퍼카를 처음으로 한꺼번에
만난 것은 1995년 5월의 일이었다.
미국 서부의 캘리포니아 주 어바인(Irvine)지역은 필자가 디자이너로
근무하던 자동차 메이커의 북미 디자인 연구소를 비롯해 일본과 유럽의 자동차 메이커들의
미국 현지 디자인 연구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그 시기에는 매년 각 메이커의 디자인 연구소가 차례로 오픈 스튜디오(open studio)행사를 열곤 했다.
그 해에는 도요타의 미국 디자인 연구소 ‘캘티
스튜디오(CALTY STUDIO)’에서 행사가 열렸는데, 부대 행사로
각 연구소의 소장(Chief Designer) 들이 소유한 명 차 전시회도 함께 열렸다.
도요타 Calty Studio
행사에는 스바루(SUBARU)의 치프 디자이너가 쿤타치를, 마쓰다의 치프
디자이너가 페라리 308을 갖고 나왔었다.
캘리포니아의 강렬한 햇살을 받고 있는 샤프한 모서리를 가진 은빛 쿤타치는 ‘조각품’ 그 자체였다.
솟구치듯 열리는 걸 윙 도어와, 허리보다 낮은 높이의 지붕으로 서구인들은 물론이고,
덩치가 작은 동양인들에게도 차에 타고 내리는 것 자체가 ‘운동’이다.
게다가 시동을 걸자 맹수가 포효하듯 울어대는 배기음은 곁에 서 있던 필자의 심장이
뒤흔들릴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뒤이어 풍겨오는 독특한 배기가스 냄새…. 이쯤 되면 누구든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피가 끓는’ 최면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람보르기니 쿤타치의 25주년 기념모델
한편으로 이탈리안 레드 바디 컬러를 가진 페라리 308의 엔진 소리는 좀 더 기계적이었다.
굵직한 배기음 사이로 들려오는 고음의 캠 샤프트 회전음 역시 질주 본능에 불을 당긴다.
이렇듯 이탈리아 수퍼카들의 엔진 소리는 야수적이고 격정적이다.
포르쉐 911 카레라
그에 비하면 또 다른 치프 디자이너가 몰고 온 포르쉐는 독일 스포츠카답게
정밀한 기계로써의 소리를 들려주었다.
마치 곤충이 얇은 날개를 떠는 듯한 고음의 소리는 기술제일주의의 독일
스포츠카의 성격을 말해주는 듯 했다.
최초의 등장 이후 4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람보르기니 쿤타치의
일필휘지(一筆揮之)적 감성은 여전히 건재하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페라리의 우아함 역시 날이 갈수록 빛을 더한다.
수퍼카의 디자인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도저히 ‘기계’의
기준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피를 끓게 하는’ 격정적 감성과 카리스마,
이것이 40여 년 동안 한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하게 유지해 온 두
이태리 라이벌들의 직관적 감성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감성 때문에 이탈리아 수퍼카의 디자인이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