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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이야기

미쓰비시 파제로와 현대 갤로퍼

by 알엔피싱 2004. 2. 1.

92년 당시 이놈의 갤로퍼가...


미쓰비시가 다시 국내에 진출한다고 한다.

미쓰비시는 현대자동차와 기술적인 연관이 있고, 1991년부터 국내에서 판매됐었던

갤로퍼(Galloper)의 오리지널 모델도 미쓰비시의 SUV 파제로(Pajero)이기 때문에

그리 낯선 느낌은 아니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은 갤로퍼의 원형

모델이라고 할수 있는 파제로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1991 년형 현대 갤로퍼


파제로는 양산형 차량으로 처음 나온 것이 1982년형으로 3도어 차체를 가진 모델이

등장했는데, 미쓰비시가 파제로의 원형이 되는 모델을 처음 내놓은 것은

1973년의 동경 모터쇼에서였다고 한다. 

미쓰비시는 2차 대전 이후에 미국의 지프(Jeep) 메이커 윌리스(Willeys)와의 협상 끝에

윌리스의 민간형 지프 모델 CJ3A를 생산하게 된다.

이 차량은 2차대전의 패전국이었던 일본에서 매우 요긴하게 쓰였을 뿐 아니라,

미쓰비시가 독자적인 SUV 모델 파제로를 개발하는 데에 밑거름이 된 모델이기도 하다.

결국 미쓰비시의 SUV의 계보도 따지고 보면 미국의 Jeep과 혈연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첫 번째 프로토타입이 1973년에 나왔고,

두 번째 프로토타입 파제로 II가 1978년에 나오고, 그 뒤로 양산형 모델이 개발된

것이 바로 1982년의 3도어 모델이라고 한다.

그리고 1983년에 축간 거리를 늘리고 5도어 차체를 가진 롱 바디 모델이 나오게 된다.

 

1982 년형 파제로 2도어

 

미쓰비시가 라이선스 생산했던 CJ3A

 

1983 년형 파제로 롱 바디


파제로(Pajero)라는 이름은 스페인어인데, 남부 아르헨티나의 평원에 서식하는

맹수를 의미하는 레오파드(Leopard)의 스페인어 식 표기 ‘Leopardus pajeros’ 에서 따 온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판매 지역에 따라 스페인과 인도, 그리고 브라질 이외의 미주대륙에서는 파제로(Pajero)라는 이름 대신 몬테로(Montero, 영어로 mountain hunter를 뜻한다고 함), 그리고 영국에서는

쇼군(Shogun, 일본의 무사) 등의 이름이 쓰이기도 했다.

또한 1980년대 후반에는 크라이슬러와 미쓰비시의 제휴 등으로 닷지 브랜드에서 레이더(Raider)라는

이름으로 미국에서 판매되기도 했다.

 

 

1988 년형 닷지 레이더,

사진 출처: adclassic.com


  그렇지만 2006년 이후에 미국에서 파제로는 더 이상 판매되고 있지는 않다.

주목되는 점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쓰비시의 차량 판매가 특히 미국에서 큰 폭으로 떨어졌다는 점이다.

사실 1990년대는 미쓰비시가 크라이슬러와 제휴하면서 미쓰비시는 물론이고,

닷지(Dodge)나 이글(Eagle) 등 크라이슬러 산하의 브랜드로 판매되는 미쓰비시 차량들의 물량도 상당했었다.

지금 되돌아봐도 이 시기, 즉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후반에 이르는

시기가 자동차 메이커로써 미쓰비시의 전성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 시기에 2세대 이클립스(Eclipse) 쿠페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었다.

이클립스 뿐 아니라, 파제로는 파리-다카르 랠리에서 막강한 성능으로 상위권을 휩쓸다시피 했다.

 

1995 년형 2세대 이클립스 쿠페

 

파리- 다카르 랠리에서의 파제로


파리-다카르 랠리는 일명 ‘죽음의 랠리’ 라고도 불리며 매년 1월 1일 프랑스

파리를 출발해서 아프리카의 다카르에 이르는 무려 9천여km의 거리를 한달

가까이 달리는 전 세계적인 경주대회였다.

물론 최근에는 환경단체의 반발과 치안 등의 이유로 이름만 다카르 랠리일 뿐, 아르헨티나와

칠레 등 중남미에서 치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시기 1980년대에 파제로는 1세대 모델로 대회에 처음 참가해서 놀라운

성과를 거두며 차량의 유명세도 높아졌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1989년과 1990년 1년 동안 파제로는 전 세계적으로 무려 30만대가 판매되기도 한다.


이런 유명세를 바탕으로 2세대 모델이 1991년에 나오는데, 전체적인 모습은 1세대 모델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보다 부드러워진 모습이었지만,

기구적으로는 거의 모든 부분이 새로워진 것이었다고 한다.

한편 1997년에는 앞 뒤 펜더에 블리스터를 넣은 디자인의 페이스 리프트 모델이 나오는데,

전체적인 디자인은 거의 동일하면서, 휠 아치 주변의 형태만 달라진 것이었다.

이 시기에는 2세대 파제로의 3도어 모델에 범퍼와 와이드 펜더 등을

부착해서 ‘파제로 에볼루션(Pajero Evolution)’이라는 모델이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이 보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1999년에는 국내에서도 ‘파제로 에볼루션’과 유사한

이름과 디자인을 가진 ‘갤로퍼 이노베이션(Galloper Innovation)’ 이라는 모델이 나오기도 했다.

물론 국내에 나온 모델은 1세대 파제로를 바탕으로 한 갤로퍼에 부분적인

변경을 했던 갤로퍼 II모델에 와이드 펜더와 범퍼 등을 덧댄 것이기는 했지만, ‘파제로 에볼루션’과

비슷한 이미지로 개발되었던 것이다. 지금 같았으면 ‘짝퉁’ 이라고 손가락질 받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1991 년형 2세대 파제로

 

2 세대의 페이스 리프트 모델의 1997 년형 파제로

 

파제로 에볼루션

 

갤로퍼 이노베이션


1999년에 일본에서는 3세대 파제로 모델이 나오지만, 필리핀 등의 동남아 지역에는

2003년부터 출시되었다고 한다.

3세대 파제로는 차체 구조가 이전의 프레임 방식에서 승용차와 같이

일체구조식 모노코크(Monocoque) 구조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그 전까지 사다리꼴 형태에 가까웠던 휠 아치의 형태도 둥글게 바뀌면서 보다

부드러운 도시용 차량의 이미지를 가지게 된다. 물론 이로 인해서 1세대와 2세대

파제로가 가지고 있던 전천후 차량으로서의 이미지는 희석되고 만다.

3세대 모델은 2006년까지 생산된다.

 

1999 년형 3세대 파제로


지금 나오고 있는 파제로는 2007년 형으로 발표된 4세대 모델이다.

사실 현재의 시점으로 본다면 4세대 모델이 나온 것도 이미 5년 전이지만,

왠지 모르게 크게 관심을 받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은 아마도 파리-다카르 랠리의 쇠퇴와도 관련이 클 것이다.

1세대 파제로가 파리-다카르 랠리를 통해 급격하게 성장을 했기 때문에,

그 경기대회가 주목을 받지 못하면서 자연스럽게 파제로도 관심을 덜 받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2007 년형 4세대 파제로


그런데 이유가 어찌 됐든, 자동차들이 전기동력으로 바뀌면서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기능보다는 그저 깔끔하고 세련된 차들만 나오게 된다면,

미래에는 갤로퍼나 파제로와 같이 터프하고 남성미 넘치는

SUV의 모습은 보기 어려워질 지도 모를 일이다.

 

 


 

 


 

 

 

 

 

파리-모스코바-북경 마라톤 랠리 

 

뉴스일자: 2012년01월29일 11시47분

지금은 잊혀진 ‘환상의 랠리’ ‘전설의 랠리’를 아십니까?

죽음과 모험의 대 서사시로 불리는 ‘파리-다카르’ 랠리보다 무려 60년이나 앞서서 열렸던

파리-북경 랠리 1907년 르 마틴지는 당시로서는 놀라운 세계 최초의 랠리를 구상했다.

바로 실크로드를 따라 달리는 북경-파리간의 레이스를 제안한 것.

당시 이 랠리가 얼마나 매력적이었나 하는 것은 예상을 크게 웃도는 105명이 엔트리한 것. 

그러나 이해 6월 10일 역사적인 대장정의 출발점에 선 자동차는 불과 5대였다.

그리고 3개월의 긴 여정을 마치고 8월 10일 프리 파리 르마틴지 빌딩 앞에 도착한 차는 3대.

피아트 이탈라를 몬 이태리의 마르케스 보르게스 백작이 우승했지만 그것은 따질 필요가 없었다.

모두가 영웅이었고, 자연에 도전한 인간 승리였기 때문이다.

제1회 대회가 열리고 중단된 이 대회는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되살리려고

노력했으나 번번이 실패에 그쳐 ‘환상의 랠리’ ‘전설의 랠리’라 불려오다가

마침내 84년만인 1992년 파리에서 북경까지 세계에서 최장거리 마라톤 랠리가 현실화 됐다.

첫 대회 이후 84년 만에 화려하게 부활
이 랠리는 일본 미쓰비시가 100% 출자한 MAPS와 프랑스자동차연맹(FFSA)이

주최하고 벨기에, 독일, 폴란드, CIS(독립국가연합), 중국 등의

후원을 받아 제1회 ‘웨스트 이스트 파리-모스코바-베이징

마라톤 레이드’라는 공식 명칭을 얻었다.   

대회기간 중 통과하는 국가는 프랑스, 벨기에, 독일, 폴란드를 거쳐

러시아, 카자흐스탄, 투르크만, 우즈베키스탄을 거쳐 중국 등의 국경을 넘는다.

카자흐, 타클라마칸, 고비 등 3개 사막과 고원을 헤치며 달리는 총 거리가 1만 6,000km에 달한다.

92년의 일정표에 따르면 9월 1일부터 본격적인 레이스에 돌입해 27일 동안의

대격전을 치렀던 이 대회는 국제자동차연맹(FIA)과 국제자동차스포츠연맹(FISA)의

1992년 마라톤 레이드 규약에 준해 치러져 참가차는

모두 340대(경주차는 260대, 지원차 80대)로 제한했다.

경주차는 크게 4개 등급으로 나누었다.

그룹 T1은 시판 오프로드 차로 FISA의 승인을 반은 차를 기본으로

사소한 부분만 레이스용으로 개초한 차다.

그룹 T2는 승인된 시판차를 기본으로 엔진에서 외관까지 허용된 한계에서

개조된 차로 시판차 개조부분으로 불린다.

엔진은 FISA 그룹A에서 승인된 차의 엔진이라면 바꿔 달아도 된다.

또 랠리용 에볼루션 타입까지도 무방하다.

그룹 T3는 프로토 타입으로 어떤 개조도 가능해 단 한 대만 만든 차여도 출전할 수 있다.

그러나 무게제한을 둬 최저 중량이 2.0L 이하 4WD는 1,000kg, 2.0L 이상

4WD는 1,300kg까지여서 기상천외한 괴물차가 속출한다.

이 부분에는 파리-다카르 랠리에 출전했던 차들이 대거 참가하고 있다.

그룹 T4는 무게가 3,500kg 이상의 차로 시판 오프로드 트럭이 경쟁한다.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서울랠리단이 참가
그렇다면 이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어떤 자격이 필요했을까?

국제와 국내 라이선스를 필요로 한다.

국제 라이선스가 있는 경우에는 국내 A급 라이선스를 갖고 있고

연속해서 1년 이내에 레이스 1회를 더해 5회 이상의 경기에

참가해 완주한 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대회의 규모에 맞게 참가비도 엄청났다.

자동차 1대에 2명을 기준으로 19만프랑(당시 2,850만원 정도)로 여기에는

경기운영비를 포함해 의료체제비용 자배책보험비용 부상자 본국 소환비용

비상용 식량 중국 운전면허 취득비 중국 넘버플레이트 비용

가교 통행료 도로통행료 도항비 숙박비 차량운송비 라디오 렌트 비용 등등이 포함됐다.

소련(지금의 독립국가연합)의 쿠테타 발생으로 취소되었던 91년에는

18개국에서 199대의 경주차에 466명이 신청하기도 했다.

나라별로는 프랑스(120대), 일본(22대), 이태리(9대) 등이었고, 토요타, 메르체데스,

랜드로버, 닛산, 미쓰비시, 르노, 푸조 등의 자동차 메이커들도 대거 참가했다.

파리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출발해 유럽 고속도로를 동쪽으로 달려 모스코바에 이르는 3,000km는 모스코바에서 열리는 본격적인 경주를 위한 서막이다.

파리에서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까지는 1,600km이고 바르샤바에서

모스코바까지는 1,300km이다. 이후 레이스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도전 그 자체다.

평균 기온이 섭씨 80도를 웃도는 죽음의 땅, 검은 사막이라 불리는 카라쿰을 지나

해발고도 3,700m의 천산산맥을 질주한다.

이곳에서 드라이버들은 산소부족으로 고통을 받고 경주차는 힘이 떨어져 갤갤거리며 주저앉는다. 

그렇다고 끝이 아니다. 도처에 죽음의 모래언덕이 물고기 비늘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유혹하면서 거대한 피라미드처럼 앞길을 막는 타클라마칸 사막을 통과해야 한다.

최종 관문인 고비사막에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이미 피로에 지칠대로 지쳐있는 상황에서 메마른 암석이 맞는다.

그리고 얼마 후 북경으로 입성한다. 누가 결승선에 먼저 들어왔는지는 따지지 않는다.

파리를 떠나 북경까지 온 이는 모두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의지와 도전에서

물러서지 않았던 진정한 영웅이기 때문이다.

92년 대회에서는 57대의 경주차만 북경에 들어왔다.


Tip
이 대회에는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서울 랠리단의 김영과 이재영 현광민 씨가

현대 갤로퍼를 몰고 이 험한 여정에 도전장을 던졌다.

결과는 종합 44위. 출전 클래스인 T1에서는 7위로 들어왔다. 

이들은 대회 기간 중 곳곳에서 닥치는 어려움과 사투를 벌이면서 끝까지 대회를

포기하지 않고 북경에 입성해 대한민국의 위상을 크게 높였다.

또한 이들은 자신들의 경험담을 잡지사에 기고해 여정을 상세하게 표현 많은 독자들의 사랑도 받았다.

이들의 노고에 깊은 존경을 표한다.

 

완주후 귀국하여 정비중 촬영한 이재영씨 사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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